탄핵안 가결을 기원하며 올려봅니다. "탄핵안 깎던 장인"

탄핵안 가결을 기원하며 올려봅니다. "탄핵안 깎던 장인"

벌써 40여 일 전이다. JTBC가 갓 따블레뜨를 입수하여 최순siri보도를 하던 길이다. 주식사러 여의도 거래소 왔다 가는 길에, 9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의사당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의사당대로 길가에 앉아서 탄핵안을 깎아 파는 탄핵의 장인이 있었다. 이러려고 투표 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서 탄핵안을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시간을 굉장히 오래 부르는 것 같았다.

"좀 빨리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탄핵안 작성시간으로 협상하겠소? 답답하거든 국물당 가 하우." 

대단히 무뚝뚝한 장인이었다. 빨리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간보고 보고 여론조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노통때처럼 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통과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표결해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지지하는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추대표,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장인은 퉁명스럽게, 

"간잽이한테 가서 쓰우. 난 안 쓰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근ㅏ임 없는 2017년 신정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부결되고 기각된다니까. 탄핵안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탄핵안 원안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주갤을 눈팅하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탄핵안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상정한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탄핵안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정치를 해 가지고 정치가 될 턱이 없다. 지지가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시간만 늦게 부른다. 죄 없는 노통도 탄핵하고 참 나쁜 장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장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의사당 둥근 돔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돔구연다워 보였다. 날카로운 눈빛과 기개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장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減殺)된 셈이다.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내놨더니 비박들은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2014헌나1 [1] 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거지갑의 설명을 들어 보니, 탄핵안 발의가 너무 빠르면 역풍이 불어 반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탄핵안 내용이 너무 짧으면 헌재영감들이 기각시키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장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국감(國監)은 혹 비리가 발생하면 피감기관에 10년치 자료를 요청하고 증언을 요구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사퇴하여 좀체로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요새 국감은 비리가 한번 발생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피감기관에 질의할 때 질 좋은 질문을 준비하여 시간을 넉넉히 사용하여 팩트로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세 번 한 뒤 비로서 증언을 얻어낸다. 이것을 팩트폭력이라고 한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7분의 시간제한을 주고 금방 턴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위증을 하고 답변을 거부해도 털어버릴 수 없다. 그렇지만 시간이 넉넉하지도 않은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국감에서 진실된 증언을 할 증인도 없다.

인사(人事)만 해도 그러다. 노통때에는 국무위원(國務委員)을 임명하면 장관은 몇표, 총리는 몇표 식 으로 인사청문회를 통해 털었고, 총리, 헌법재판관은 것은 세 배 이상 털었다. 인사청문회란 전입신고와 논문까지 터는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논문을 표절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민정비서실을 믿고 터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털지도 않는데 전입신고를 성실히 하고 세금을 제대로 낼 리 없다. 노통때 의원들은 몸싸움은 몸싸움이요, 날치기는 날치기지만, 본회의를 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지지자를 만족시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법안과 국감을 했다.

이 탄핵안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장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정치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장인이 나 같은 젊은이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탄핵안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장인을 찾아가서 추탕에 탁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장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장인이 앉았던 자리에 장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장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의사당의 지붕 돔을 바라보았다. 푸른 창공에 마징가Z를 발진시킬 듯한 돔 끝으로 흰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장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탄핵안을 깎다가 유연히 돔 끝에 구름을 바라보던 장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채국동리하(採菊東籬下)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 도연명(陶淵明)의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국회 앞 집회에 참석했더니 시민들이 박근혜 탄핵을 외치고 있었다. 전에 정주영, 장세동을 팩트로 쿵쿵 두들겨서 털던 생각이 난다. 팩력배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진심어리게 사퇴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만호도의성(萬戶擣衣聲)이니 위군추야도의성(爲君秋夜擣衣聲)이니 애수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12년 전 탄핵안 깎던 장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 cocon님
  • (2016-12-08 22:03)
    필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111
    • (2016-12-08 22:03)
      주.... 주갤에서 오셨어요? 뭐든 잘 하시는 분이 쓰셨을법한 글입니다. 
      #CLiOS
      •  WeissRose님
      • (2016-12-08 22:13)
        주류갤은 좀 했습니다ㅋㅋㅋㅋㅋ
        • Raegar님
        • (2016-12-08 22:03)
          엌ㅋㅋㅋㅋㅋㅋㅋ
          • (2016-12-08 22:04)
            +1 

            필력보소. ㄷ ㄷ ㄷ ㄷ 
            #CLiOS
            • landscape님
            • (2016-12-08 22:07)
              필력이 뛰어나시네요^^
              • SunWalker님
              • (2016-12-08 22:08)
                오오 좋네요
                • (2016-12-08 22:08)
                  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CIRRUS님
                  • (2016-12-08 22:10)
                    퀄리티가 ㅋㅋㅋㅋㅋ 주개럼작 인 듯 ㅋㅋㅋㅋ
                    •  WeissRose님
                    • (2016-12-08 22:14)
                      주류갤만 좀 했습니다ㅋㅋㅋㅋ
                      • Ivory님
                      • (2016-12-08 22:12)
                        엌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 (2016-12-08 22:36)
                          대박 ㅋㅋㅋ 놀랍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rom CLiOS
                          • 감이온다님
                          • (2016-12-08 22:48)
                            오..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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