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패망 이후 한반도로 진공하려 했던 장개석

일본 패망 이후 한반도로 진공하려 했던 장개석


배경한의 논문에 따르면, 1944년말 장개석의 국민정부는 일본 패망 이후의 한반도에 대한 군사 진공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물론, 해방과 동시에 38도선을 기점으로 미국과 소련이 한반
도를 분할 점령함에 따라 이 계획이 실현되지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하여 당시 군령부에서는, 종전과 함께 진행될 연합국측의 한반도에 대한 군대 파견시에 중국군도 함께 원정군을 파견하되 미국군과 영국군이 동시에 진공하는 경우 한강 이남은 영국군과 미국군이, 한강이북에는 중국군이 진주하고 군대의 숫자에서도 중국군과 영, 미군이 각각 4:1이 되는 정도로 중국군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새로 창설될 한국군도, 중국의 지원 아래 중국에서 만들어져 활동하던 한국광복군을 중심으로 조직과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군 중심의 한반도 진공작전은 소련의 대일참전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추진되어야한다는 점을 군령부에서는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중국군부에서는 일본이 패망할 경우 중국군 중심의 한반도진공이 이루어져야하고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광복군 중심의 한국군 창설을 통하여 전후 한반도에서의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확고하게 하려는 입장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경한. "중일전쟁시기 蔣介石ㆍ國民政府의 對韓政策." 역사학보, 208 (2010.12): p. 289.
  • 김리타님
  • (2017-02-27 17:19)
    계획이야 어쨌든 그 당시 장개석에겐 그럴 능력이 없었죠. 
    #CLiOS
    • weakness님
    • (2017-02-27 17:24)
      타이슨 옹이 말씀하셨죠.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쳐 맞기 전까지는.
      • 고고소미님
      • (2017-02-27 17:27)
        장개석의 한반도 진출이라니...웃으면 되는 건가요?
        #CLiOS
        •  중국집군만두님
        • (2017-02-27 17:37)
          중국이 전후 한반도를 자국 영향권 하에 두려고 했다는건 확실한 사실이고 이를 위해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여러 회담에서 조선을 독립시킬 것을  주장한 것 아닌가요. 
          해방정국에서 김구 등의 임정 출신 정치인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한 것도 남경으로부터의 지원이 끊긴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베트남에서는 국부군과 영국군이 각각 남북으로 나누어 진주하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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